마을 바깥에 있는 커다란 숲에는 전설이 하나 있었다. 어두운 숲 깊숙한 곳엔 거대한 저택이 있고, 그곳에는 인간들을 잡아먹는 오래된 괴물이 산다는, 다소 시답지 않은 이야기. 인간을 닮았으나 속은 사악하고 잔인한 괴물이 인간을 헤매게 만들다 잡아먹는다고 말하는, 그런 쓸모없는 속설 말이다. 뭐, 믿는지 믿지 않을지는 듣는 사람의 자유지만.
신록이 우거진 숲은 바람이 조금만 스쳐 지나가도 풀 특유의 냄새로 응수하며 이내 주변을 가득 메웠다. 그 향기에도 색깔이 있다면, 시린 달빛 같은 색이려나. 푹신한 땅을 밟는 소리가 누군가의 발걸음을 따라 들려오고, 회백색 머리가 그 리듬에 맞춰 찰랑이며 반짝임을 흩뿌렸다. 이어서 누군가의 콧노래 소리, 그것보단 작지만 책들끼리 부닥치는 소리가 은은하게 울려 퍼졌다. 제법 많은 책을 들고 가는지 그 소리가 생각보다 컸지만, 걸음걸이에선 지친감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그 무게를 실감하지 못하는 걸까?
발걸음 소리가 멈췄고, 책을 내려놓는 소리와, 무언가를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답 없이 홀로 울려 퍼지고 있는 혼잣말을 따라가보면, 수많은 책들을 눈앞에 두고 숫자를 세고 있는 그의 밝은 표정이 먼저 눈에 띄었다. 한동안은 이 책들을 보며 즐거움을 만끽할 상상이라도 하는 걸까? 이런 자료를 끊임없이 만들어낸다는 점에선, 꽤 괜찮은 녀석들이네!라고 하는 걸 봐선 그런 것 같았다. 그렇게 행복한 미래를 꿈꾸며 빠진 책이 없나 확인한 후 다시 출발하려던 때였다.
컹! 컹! 컹!
상당히 좋은 귀가 늑대들의 울음소리를 감지해냈다. 평소라면 그냥 무시하고 지나갔을 테지만, 완벽하게 느껴지는 순간이 방해받는 걸 전적으로 싫어하기 때문에 순순히 넘어갈 수 없었던 모양이었다. 그는 발걸음을 돌려 울음소리의 근원지로 향했다.
이윽고 도착한 그가 발견한 건 늑대들 무리 한가운데 놓여있는 작은 바구니였다. 그의 눈은 늑대들과 바구니를 번갈아 바라봤고, 그 눈동자에 호기심을 깃들였다. 이윽고 그가 지팡이를 휘둘러 늑대들을 쫓아냈다. 그는 늑대들이 도주하는 모습을 한번 흘깃 바라보다 새롭게 떠오른 관심사로 시선을 돌렸다.
이런 전개, 분명 인간들의 책에서 본 적이 있었다. 분명 안엔 인간의 아기가 있겠지! 암, 그거 말곤 나올 수 있는 전개가 없어! 그는 천을 풀어내 자신의 추측을 확인했다. 그 예상대로였다. 처음으로 마주한 인간의 아기는 빨래한 후 햇빛에 잘 건조한 이불의 냄새랑 느낌이 비슷해, 새로움과 신기함이 절로 떠올랐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호기심을 충족한 후에는 거짓말같이 관심이 뚝 떨어져 버렸다. 게다가 다른 때면 몰라도 지금은 구미조차 당기지 않았다. 그는 어떤 선택이 더 합리적일지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주전부리도 지금은 생각이 없는데 어쩔까나. 데려가서 나중에 먹을까나? 기왕 늑대들의 먹이를 뺏어버렸으니, 다시 두고 가는 건 모양새가 썩 좋진 않겠지."
그렇게 고민하던 찰나, 손끝에서 살아있는 흔들거림이 느껴졌다. 그는 생각지도 못했던 감각에 당황해 연약하기 짝이 없는 아기에게 땅바닥과의 잔혹한 만남을 주선할 뻔했다. 바람이 불진 않았지만, 찝찝해진 등 뒤로 찬 공기가 스쳐 지나가는 것 같았다. 식은땀이 흐른다는 표현이 이런 건가 보다. 그는 아기의 움직임을 멈추겠답시고 눈을 맞춘 후 최면을 걸어봤지만, 그것도 뭔가를 알고 있는 지능이어야 가능했던 모양이었다. 아기의 손이 그의 눈을 찔러 그는 잠시 동안 소리 없는 아우성을 질렀다. 수백 년을 살면서도 몰랐던, 새로우면서도 쓸데없는 지식을 습득한 순간이었다. 그는 생각이 바꿔, 열받게 만드는데 재주가 있는 이 녀석은 그냥 잡아먹어 버리겠다며 눈빛을 바꿔 포식자의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보통 사람이면 온몸이 얼어붙어 절대 움직이지 못할, 하찮은 것을 바라보는 싸늘한 시선이 아기를 꿰뚫었다.
"꺄우!"
그때 그 핏덩이에서 뻗어 나온 손이 그의 얼굴에 닿았다. 그의 눈동자가 순간적으로 숨을 불어넣은 비눗방울처럼 커다래졌다. 그는 홀린 듯이 장갑을 벗어 제 손을 아기의 손에 갖다 댔다. 거기서 느껴지는 건 아기의 손이 자신의 손가락을 붙드는 감각일 뿐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방금 전까지의 분노를 순식간에 없애버릴 수 있었다. 살면서 수많은 인간들의 촉감을 겪어봤지만 이렇게 보드라운 느낌은 처음이었다. 인간이 이렇게까지 보드라울 수 있나? 그는 자신의 분노조차 밀어버린 놀라움에 말을 잠시 잊어버렸다. 고개를 저으며 생각을 이어봤고, 결론은 이랬다. 평소와 다르지만 어쩐지 나쁘지 않아, 오히려 괜찮아!
새로운 감정에 대한 놀라움은 금방 흥미로 바뀌었고. 그는 아기 그 자체에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 어차피 인간은 금방 자란다니, 키워서 먹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키우면 두고두고 먹을 수 있으니까! 그렇게 스스로를 납득시킨 그는, 바구니를 안고 자신의 저택으로 향했다. 당분간은 인간의 마을에 갈 생각이 없었지만, 역시 삶이란 계획 대로만은 되진 않는 모양이었다. 계획이 틀어져버리고, 귀찮게 되었지만 의외로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이 정도의 틀어짐은 충분히 감당할 수 있으니까, 오히려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쿠, 그러고 보니 네 이름을 잊고 있었구나!"
그에게 있어 아기는 인격체보단 가축이라고 봐도 무방하지만, 가축에게도 이름은 붙여주는 법이었다. 직접적으로 고기라던가, 가축이라고 부를 순 없는 노릇이니까. 사실 그렇게 불러도 상관은 없지만, 그건 역시 멋이 없는 거 같았다. 일단은 인간이고, 사고라는 걸 할 수 있는 존재니까 제대로 된 이름을 정해주는 게 멋지지 않을까? 이윽고 생각을 정리한 그는 송곳니가 드러나게 미소를 지으며 아기에게 말했다.
"좋아. 앞으로 네 이름은 셜록이라고 하지. 풀네임은 셜록 홈즈, 뭐 그 정도의 설정이면 되지 않겠나!"
그 말의 의미를 알아들었는지, 아기는 아까보다 더 날뛰며 바구니를 흔들었다. 그는 예측했다는 듯이 아까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고 굳게 다짐하며 바구니를 좀 더 강하게 끌어안았다. 한편으론, 아기의 반응을 읽어낼 수 없어 자신도 모르게 혼잣말을 내뱉었다.
'좋다는 건지, 아니라는 건지 말을 해주면 좋겠는데 말을 못하는구먼. 내가 지은 이름, 자네에게 괜찮은 건가?' 곧 아기의 얼굴에 만연한 미소를 보고 멋대로 좋아하는 것 같다고 결론 내렸다.
그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발걸음을 재촉하다 책을 놓고 왔다는 사실을 기억해냈는지 고개를 살짝 들어 올리며 멈췄으나, 짧은 생각을 끝낸 후 고개를 숙이고 아기와 눈을 마주치며 발걸음을 떼었다. 책은 어디 가지 않을 테니까, 지금 걱정할 필요는 없겠지. 지금 신경 써야 할 것은, 이 품에 안겨있는 약해빠진 인간 아기 쪽이니까.
오래 걸리지 않아 도착한 곳은 사람들의 전설에서만 언급되던 곳. 사방으로 숲이 그림같이 펼쳐진 거대한 저택이었다. 저택의 주인은 거대한 저택의 대문을 열며 아기에게 속삭였다. 괴물의 집에 온 것을 환영하네, 셜록 홈즈. 은은한 달빛이 비치는 머리카락 사이로 그의 흥미로운 소재를 보는 듯한 눈빛이 새어 나왔다. 이어지는 건 다시 사람 좋은 미소. 가볍고 경쾌한 발소리와, 문이 닫히는 둔중한 소리가 상반되며 흘러갔다.
"그럼 갔다 오지."
"꺄아!"
보통은 못 알아듣지 않나, 저 시기 때는? 딱히 기대로 안 하고 한 말이었는데 반응이 오니 기분이 이상했다. 이 넓은 저택에서 혼자 수백 년을 살아오며 이 집을 한 번도 따뜻하다고 느낀 적은 없었는데, 한순간이지만 춥지 않았다. 계속 이럴 수 있다면, 앞으로도 집에 대답을 해줄 존재가 있는 게 생각보다 나쁘진 않은 것 같았다. 그때, 그 자신도 모르게 혼잣말을 혼잣말로 아니게 만들어주는 존재의 소중함이 마음속에 새겨졌다. 그것을 잃었을 때의 고통과 함께.
사람들의 편견과 달리 그는 필연적으로 인간과 떨어질 수 없는 처지인지라 상상 이상으로 자주 인간들의 마을에 들리고, 그들의 문물에도 익숙한 편이었다. 톡 까놓고 말해서 인간의 피를 양식으로 삼는데 어떻게 인간하고 떨어져 지내겠는가. 다만, 만나는 사람마다 매혹을 적당히 걸어서 기억을 제대로 하지 못하게 만들 뿐이었다.
그는 돌아다니면서도 쓸데 없는 일이라는 생각을 벗어날 수 없었지만, 그래도 새로운 걸 배우는 건 좋은 거라고 생각을 고치며 그걸로 납득했다. 얼마나 돌아다녔을까? 드디어 마을을 벗어난 그는 벗어나자마자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았던 불안함을 직시하고 부리나케 저택으로 달려갔다. 인간의 아이는 연약한 주제 돌아다니기도 잘한다는 소리를 들었던 탓이었다. 얌전하게 있었으면 좋겠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집, 인간 아기에겐 꽤나 위험하니까! 얼마 지나지 않아 급하게 문이 열리는 소리와, 아기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저택에 울려 퍼졌다.
"셜록, 셜록! 셜록 홈즈!!!"
다급히 올라가서 확인해봤지만, 그를 반기는 건 다시 빨 필요가 없을 정도로 깔끔한 바구니뿐이었다. 차갑게 식은지 오래인 피가 식다 못해 얼어붙어 그 가시에 심장이 찔리는 것 같았다. 머릿속에서 온갖 최악의 상황들이 연속해서 떠오르고 떠올리지 않으려 해도 자제가 되지 않았다. 이렇게까지 통제가 안 되는 건 처음이라, 좋든 싫든 그 아기를 찾지 않을 수 없었다. 저택 안을 그의 다급한 뜀박질 소리가 가득 매워갔다.
한참을 뛰다 보니 드디어 머리가 식혀졌는지, 찾을 방법이 생각난 듯 했다. 그는 살짝 눈을 감고 힘을 끌어올려 손을 허공에 뻗었다. 그러자 시리듯이 푸른 빛깔의 나비들이 그의 그림자 안에서부터 새어 나와 주변을 나돌았다. 차가운 밤하늘의 고혹한 빛깔이 담긴 그 나비들은, 분명 아기의 시선을 끌어올 수 있겠지. 그는 나비들을 어루만지며 나직이 속삭였다.
"아기를 찾아."
석양의 주홍빛 사이로 파란빛이 섞여들어가나 싶더니, 빠른 속도로 퍼져나갔다. 그걸 덤덤한 눈으로 응시하던 그는 나비들이 모두 떠난 후, 꽤 오랜 시간 자리를 비웠다곤 하지만 이렇게까지 안 보일 수가 있는가에 대해 아기의 행동력에 의문을 가지며 투덜거리면서도, 인간의 아기라고 무시했던 과거를 잠시 반성했다. 그러고 나선 나비들에게만 맡겨둘 수는 없어 자신도 방을 벗어나 발걸음을 옮겼다. 그때, 귓가로 그렇게 찾고 있었던 목소리가 들려왔다. 머리보다 몸이 먼저 반응하고, 어느새 그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소리가 난 곳으로 한달음에 도달하자, 난간에서 팔랑거리는 나비를 붙잡으려고 하는 아기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예상했던 대로, 나비는 좋은 미끼였던 모양이었다. 나비를 잡으려 그 짧은 몸뚱어리로 버둥거리며 애를 쓰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 순간, 방금까지의 가슴을 사정없이 찌르던 싸늘함은 사라졌다. 그 자리에 남은 건 지금 당장이라도 바닥에 주저앉고 싶은 기가 막힘과 회의감. 또 한편으로는, 밀려오는 가슴 한편이 따뜻해지면서 기쁜 듯한 기묘한 감정이었다. 그는 이 감정의 정체를 몰랐지만, 일단은 괜찮은 기분이니 넘어가기로 했다.
그는 그렇게 멋대로 돌아다니면 안 된다고 말하며 아기를 조심스럽게 들어 올렸다. 그 사이에 아기는 순발력을 발휘해 기어이 나비 하나를 붙잡았다. 그는 아기의 실력에 감탄하면서도 입에 넣어버리려고 하는 모습에 서둘러 나비를 해방시켰다. 풀려난 나비는 훨훨 날아다니다 그의 그림자 속으로 다시 되돌아갔다. 사역마는 구했지만, 그는 그 대가로 아기의 화를 사 머리카락 몇 개를 희생해야 했다. 훈훈할 것 같았던 재회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흘러 조용하던 저택이 그의 비명소리로 가득 채워졌다. 아기가 만족할 때까지...